[문화의 창] 고향서 보내온 감자

입력 2023-07-0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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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고향의 농부로부터 감자 두 박스를 받았다. 주문은 감자를 심는 봄에 했고, 어제 단단하게 포장한 감자 두 박스가 왔다. 최근 몇 년 해마다 주문하는 농가의 감자였다. 주문도 봄철에 내가 먼저 알아서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로 떠나 계절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농부가 먼저 전화를 한다. 올해는 감자를 얼마만큼 심어 얼마만큼 수확할 예정인데 미리 필요한 양을 묻는다. 농부도 판로를 확보하고 농사를 지으니 여러 가지로 안심이 된다. 지난해는 20kg 한 박스를 주문했는데 올해는 두 박스를 주문했다. 그렇게나 많이요? 하고 농부가 물었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지만, 이웃과 친구들과 나눠 먹으면 그것도 부족해 비닐 봉지 열 개쯤에 나누어 담았다.

이렇게 감자를 받을 때나 감자꽃이 핀 밭을 지날 때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시가 있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 권태응 선생이 쓰신 동시 ‘감자꽃’이다.

이번에 받은 감자가 자주색 꽃 핀 밭에서 캔 자주 감자다. 하얀 감자는 예전부터 흔하고 자주 감자는 보기 드무니 사람들 생각엔 자주 감자가 종자를 개량해 만든 감자처럼 여긴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권태응 선생이 ‘감자꽃’ 시를 쓴 게 일제 강점기 시절이고 보면 자주 감자 역시 오래전부터 재배해온 걸 알 수 있다. 자주색 고구마는 속살도 자주색이지만, 감자는 하얀 감자든 자주 감자든 속살이 희다. 삶는 솥과 솜씨에 따라 표면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뽀얀 색의 분이 포슬포슬 피어난다.

감자는 식품 분류로 보면 채소가 맞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감자 농사를 많이 짓고, 겨울이면 그것이 절반 주식 역할을 했던 강원도 대관령 주변에서 자란 나에게 감자는 채소라기보다는 한겨울을 보낼 곡식 같은 생각이 든다. 심정적으로 고구마는 채소여도 감자를 채소라고 부르면 왠지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 형제들이 간식처럼 화롯불에 구워먹은 감자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번에 받은 감자는 열 개쯤에 하나꼴로 둥그스름한 표면에 콩알만 하거나 유리구슬만 한 혹이 달려 있다.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아내는 병이 들어 감자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한 게 아니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농촌에서 자라 어른들의 일을 도왔던 경험으로 그걸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고구마는 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감자는 줄기에 영양분을 저장해 햇빛에 오래 두면 나무줄기나 풀잎처럼 푸른색을 띤다. 마트에서 감자를 흰 불빛 아래 드러내놓고 팔지 않고 그 위에 부직포나 종이박스를 펼쳐 가려두고 파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리고 표면의 작은 혹은 땅속의 감자가 어느 정도 자란 다음 비가 올 때 추가로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해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이다. 가을에도 감자 모양을 보면 지난여름 장마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릴 땐 온 동네가 감자 농사를 많이 지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부족한 쌀을 채우는 양식이기도 했지만, 자식들의 학비도 감자를 판 돈으로 장만했다. 어촌 아이들은 풍어기에, 농촌 아이들은 감자 수확이 끝나면 한꺼번에 학비를 냈다.

씨감자는 꼭 대관령 꼭대기 고랭지에서 수확한 감자를 사용했다. 대관령 아래에서 캔 감자를 씨감자로 사용하면 수확량이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씨감자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감자라도 대관령과 같은 고지대에서 차가운 공기 속에 자란 감자라야만 씨감자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자연의 묘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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