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공개(IPO)·상장폐지 제도 개편에 나선다. 단기차익 목적의 IPO 투자를 가치 기반 투자 중심으로 개선하고,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 등으로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다. 업계에선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선의의 피해가 없도록 면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금융위원회는 21일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과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공동세미나'를 공동 개최하고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이번 제도개선안을 공개했다.
◇기관투자자 ‘단타’ 막는다...의무보유 확약 확대=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IPO 종목 77개 중 74개에서 상장일에 기관투자자가 '순매도'를 기록했다. 당국은 중·장기 투자자 역할을 해야 할 기관투자자까지 단기차익 투자를 노리고 배정받은 공모주를 상장 직후에 매도하면서 수요 예측이 과열되고 적정 공모가 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당국은 이러한 IPO 시장 개선을 위해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가점도 확대하기로 했다. 배정물량 중 40% 이상을 확약한 기관투자자에게 우선 배정하기로 했으며, 40%에 미달하는 경우 주관사가 공모물량의 1%(상한금액 30억 원)를 취득해 6개월간 보유토록 했다.
정책펀드 의무보유 확약도 확대한다. 정책펀드는 현재 공모물량의 5~25%를 별도 배정하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의무보유 확약을 한 물량에만 공모주 별도배정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수요예측 과열현상을 막기 위해 수요예측 참여자격도 강화하기로 했다. 사모운용사·투자일임회사의 펀드·일임 재산에도 고유재산 참여자격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다만, 3개월 이상 의무보유를 확약하면 강화요건은 면제된다.
재간접펀드,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이용한 우회적 참여도 제한되며, 코너스톤투자자와 사전수요예측제도 도입을 지속 추진해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도 강화한다.
◇상장유지 요건 강화...코스피 시총 200억 미만 퇴출=아울러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도 내놨다. 저성과 기업의 퇴출 지연은 자본배분 비효율성과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도 저하 문제를 불러일으켜 주가지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시가총액과 매출액 요건의 기준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기존 요건이 과도하게 낮게 설정돼 있어 지난 10년간 두 요건으로 인한 상장폐지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행 코스피 시장에 상장된 종목은 시가총액 50억 원, 매출액 50억 원(시총 1000억 원 이하일 경우에만 적용)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시가총액 기준이 200억 원으로 상향되며 2027년엔 시총 300억 원·매출액 100억 원, 2028년엔 시총 500억 원·매출액 200억 원을 기준으로 한다. 연착륙을 위해 상향 목표치까지 3단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의도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내년에 상향될 시가총액과 매출액의 기준은 각각 150억 원·30억 원이며 2027년은 150억 원·30억 원, 2028년 300억 원·75억 원이다.
상장폐지를 회피하고 심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감사의견 미달을 악용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앞으로 2회 연속 감사의견 미달 시 즉시 상장폐지 하기로 했다. 또 코스닥에만 있던 분할재상장시 존속법인에 대한 상장폐지 심사제도도 코스피에 적용한다.
상장폐지 절차도 효율화한다. 현재 코스피는 최대 2심과 개선기간 4년, 코스닥은 최대 3심과 개선기간 2년으로 운영되고 있어 비효율적 심사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코스피는 개선기간을 2년으로 축소하고, 코스닥은 2심제, 개선기간도 1년 6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폐지 후 비상장 주식거래를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는 상장폐지 기업의 경우 7일간 정리매매뿐이지만,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인 K-OTC를 활용해 최대 6개월간 거래를 지원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대체로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지만, 세밀한 대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춘 상장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매출액이나 시총 기준 미달로 퇴출되는 기업이 경우에 따라 수익성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면서 “코스피 시장에서 퇴출되더라도 퇴출로 끝낼 게 아니라 코스닥이나 코넥스 시장으로 유도하는 절차도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승창 KB증권 본부장은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률이 낮으면 주관사 부담이 커진다. 결국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주관사 수익성이 나빠지면 IPO 인력 유치 등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주관사 수익성을 배려할 방안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고상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IPO에서 투자자와 주관사의 견해가 다른데 규율로는 해소할 수 없는 사안으로, 이번 제도 개선은 합리적 관행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넛지'”라면서 “단기적으로 좀 부담이 있었겠지만, 이번 제도가 잘 정착이 되면 좀 더 유연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