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부과와 유예 카드를 번갈아 뒤집으면서 국내 채권시장을 예측 불가의 폭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전일 주춤했던 국채 금리는 다가올 악재를 반영하며 다시 오름세다. 국내 내수 부진은 끝을 모르는 가운데 무역전쟁으로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채권금리는 전일의 하락분을 되돌려 전 구간 상승 마감했다. 전일 장기물 위주의 소폭 하락 마감은 지난달 22일부터 5거래일 연속 상승했던 데 따른 일시적 되돌림이었다는 평가다. 국내 채권금리는 트럼프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회피 심리가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동결로 인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에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표물인 국채 3년물은 한 달 전 연 2.482%에서 연 2.572%로 올라왔고, 장기물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21일 2.818%로 2.8%대를 돌파한 뒤 또 한 번 고점을 높여 2.8% 중반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장기채 금리가 더 높이 오른 데는 미국채 장기 금리의 급격한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오른 것은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시사했기 때문이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 금리가 급등하는 것은 채권 가격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오전(국내시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추가 10% 관세 부과를 발동하겠다고 선언한 점도 채권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 그저께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25%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고, 전일 시행 직전 이를 보류한 지 하루 만이다.
과거 재임 당시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워 주변국들을 들쑤시던 관세 정책이 돌아온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관세 일정은 한시적으로 유예했지만, 이 또한 연속적인 정책 안정성을 보장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우리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면서 물가상승과 경기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입물가가 이미 크게 오른 상황에서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란 지적이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미국의 독자적인 강달러가 심화하는 점도 수입물가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수입물가가 오르면 내수 물가 부담 역시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뜩이나 국내 소비가 침체한 상황에서 내수침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은 특히 글로벌 국가 가운데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경제성장률 둔화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조기 금리 인하 필요성이 높아지는 반면, 물가를 고려할 경우 막상 금리를 내릴 수도 없어 통화정책 경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여기에 국내 성장률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수출 경기마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원화 약세를 우려해 금리를 동결하고도 원화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이는 수출 기업들에게 단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원자재값이 상승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당장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의 오락가락한 관세 정책에 애를 먹고 있다. 과거 이미 '관세 주사'를 맞아봤기 때문에 면역 체계를 갖춰 악재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더 센 놈이 돌아왔다’라는 평가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트럼프가 재선에 한 번 성공한 이상 다음 선거를 의식할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에 관세와 관련해 조기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공산이 더 커졌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