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 중 7곳은 “노사 합의로 자율적 근로시간 관리해야”
#제약·바이오 회사 B사의 일반 연구 인력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 근무하고 있다. 부족한 근로 시간은 관리자급 직원들이 채운다. 관리자급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B사는 “장기적인 연구가 필수적인 제약업 특성상 인력 손실은 기업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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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연구부서의 75.8%가 주 52시간 제도 시행으로 인해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었다고 응답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만이라도 노사 자율 합의에 따라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기업부설연구소·연구개발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5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제 시행 후 연구개발 성과가 줄어들었다’는 응답은 75.8%, ‘연구개발 성과가 증가했다’는 응답은 24.2%로 집계됐다.
제도 시행 이후 혁신성이 저하된 연구개발 분야를 꼽는 질문에는 ‘신제품 개발’이 45.2%(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존 제품 개선’(34.6%), ‘연구인력 역량 축적’(28.5%), ‘신공정 기술 개발’(25.3%)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기업의 53.5%는 주 52시간 제도로 ‘연구개발 소요 기간이 늘었다’고 봤다. ‘줄었다’는 응답 비율은 45.4%, ‘모른다’는 1.1%였다. 기간이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69.8%가 ‘10% 이상’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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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는 기업의 연구개발 부서는 주 52시간 제도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컸다. 응답 기업의 82.2%는 연구개발 인력 현황이 ‘부족하다’고 했고, ‘적정하다’는 응답은 17.6%에 그쳤다.
인력난 원인으로는 ‘회사 규모 및 낮은 인지도’(58.9%·복수응답), ‘높은 인건비 부담’(58.4%), ‘지리적으로 어려운 접근성’(31.0%), ‘임금 등 낮은 처우’(30.5%), 등이 지목됐다.
주 52시간제의 대응책으로 시행되는 현행 유연근로시간제는 응답 기업의 37.8%만이 도입하고 있어 실효성에 한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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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노사가 합의를 통해 자율적 근로시간 관리’(69.4%·복수응답)를 가장 적합한 근로시간제로 평가했다.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 추가 8시간 연장근로 허용’(32.5%), ‘연장근로 관리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합산 관리’(23.4%), ‘6개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12.7%), ‘고소득 전문직 대상 근로시간 적용제외 방식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10.8%) 등도 제시됐다.
김종훈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이사는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기술 혁신이 요구되는 시기”라며 “특히 반도체 등 국내 핵심 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R&D 부문에서 유연한 근로시간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업무의 지속성과 집중성이 중요한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유연한 제도 적용과 함께 제도의 당초 취지인 사회적 약자의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