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도 신차 출시하며 가격 동결
자동차 평균 판매 가격 5년 새 40% 급증
내수 침체에 가격 낮추며 판매 촉진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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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자동차들의 공통점은 ‘착한 가격’이다. 상품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연식 변경 모델만 출시해도 수백만 원씩 가격을 올리던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최근 수년간 자동차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내수 시장의 성장세가 꺾인 상황에서 섣불리 가격을 올렸다가는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1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KG모빌리티(KGM)는 지난달 픽업트럭 ‘렉스턴 스포츠&칸’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렉스턴’의 연식변경 모델을 출시하면서도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했다.
렉스턴 스포츠&칸은 기존 네 가지였던 트림을 △와일드 △프레스티지 두 가지로 단순화하고 일부 고급 사양을 선택 사양으로 변경했다. 이를 통해 프레스티지 트림의 가격은 42만 원 인하한 3699만 원에, 와일드 트림은 가격을 동결한 3172만 원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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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턴 역시 세 가지였던 트림 구성을 △프리미엄 △노블레스 등 두 가지로 줄였다. 대신 기존 최상위 트림이었던 ‘더 블랙’의 디자인을 옵션 사항으로 전환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노블레스 트림은 기존 대비 259만 원 인하한 4236만 원에 내놨다.
KGM 관계자는 “트림과 옵션을 재구성해 기본 가격은 낮추고 원하는 사양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필요한 기능만 선택해 경제적인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하고 싶다는 최근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연식 변경이나 상품성 개선 모델을 출시할 때마다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이 매년 오르는 만큼 신차 개발비와 생산비용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급격한 물가 상승과 경기 불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위축되면서 이러한 기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작년 말 준중형 SUV 투싼의 연식변경 모델 ‘2025 투싼’을 출시하면서 기본 모델의 가격을 동결했다. 실내 소화기를 신규 적용하고 2열 에어 벤트, 에어로 타입 와이퍼 등 고객 선호 사양을 기본화했지만 가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연식 변경 모델인 ‘2025 쏘나타 디엣지’를 출시하면서도 가솔린 모델 최상위 트림인 인스퍼레이션의 판매 가격을 20만 원 인하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2.3%였던 점을 고려하면 가격 동결은 사실상 인하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아도 지난해 ‘EV6 GT’와 ‘레이 EV’의 상품성 개선 모델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동결하는 전략을 택했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고 정부 보조금도 축소된 가운데 가격 동결을 통해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 신차 구매를 유도하려는 의도다.
‘신차 출시=가격 인상’이라는 공식이 깨진 것은 자동차 가격이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수년간 자동차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평균 판매 가격은 2019년 3620만 원에서 지난해 5050만 원으로 5년 사이 39.5% 급증했다.

극심한 내수 시장 침체도 업계가 신차 가격 인상을 망설이는 주요 배경이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지난해 국내 신차 판매 대수는 201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격 인상으로 얻는 수익보다 가격 동결 또는 인하를 통해 판매가 확대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KAMA에 따르면 지난해 완성차 5사의 내수 판매 대수는 134만6600여 대로 2023년과 비교해 6.4% 감소했다. 업체별로 보면 현대차가 -7.4%, 기아가 -4.2%, GM 한국사업장이 -35.9%, KGM이 -25.7% 등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4년 만에 출시한 신차 효과를 본 르노코리아(80.6%)만 내수 판매가 증가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신차 가격 인하·동결 움직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차 가격뿐만 아니라 기존 모델의 판매 가격을 내리거나 구매 혜택을 강화하는 등의 프로모션도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전기차 시장에서는 보조금 감소 등의 영향으로 가격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연식 변경 모델이나 상품성 개선 모델은 원래 가격 인상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자동차 구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가격 동결은 물론 인하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며 “지난 몇 년간 가파르게 상승했던 자동차 판매 가격이 당분간 횡보세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