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지원 우선순위 ‘특별군사작전·파시즘 척결’ 매년 높아져
“우크라이나 침공 논리, 동유럽에도 적용될 것
폴란드ㆍ발트 3국이 다음 대상 될 수도”

4일 본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러시아 연방 문화부가 주도한 프로파간다 동향을 분석했다. 여러 프로파간다 수단 중 가장 눈에 띄고 빈번히 이행되는 것은 영화였다. 러시아는 2022년 11월부터 사실상 전시 영화제작 지원 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이전 정책과 다른 점은 ‘우선 주제’를 미리 발표하고 지원 대상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우선 주제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14~17개가량으로, 주로 국가 전통 강화, 애국심 고취, 역사 교육 등을 다루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해를 거듭할수록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인 ‘특별군사작전’과 ‘파시즘 척결’ 관련 주제가 점점 높은 순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해당 주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념적 근거이기도 하다.
‘나치즘·파시즘 대항과 특별군사작전에서 러시아군의 헌신 대중화’는 2023년 사업 당시 열한 번째 주제였다가 2024년에는 열 번째로 올라섰다. 표현 수위도 ‘테러리즘’, ‘자결권을 위해 싸우는 민족’ 등이 추가되며 세졌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올해 사업에선 세 번째(나치즘, 파시즘 이념 거부)와 다섯 번째(특수군사작전)까지 순위가 올랐다. 또 이전에 없던 ‘러시아의 외교정책 승리’를 선전하는 주제가 신규 추가됐다.
러시아는 1~3단계 심사를 거쳐 지난달 중순 지원 제작사들을 선정했다. 이와 별개로 최근 대통령 문화 이니셔티브 기금 2차 신청도 마감했다. 단결과 조국 수호, 전통적 가치 등의 키워드에 맞춰 창작한 사람들이 지원 대상이다. 그 밖에도 전쟁 관련 박물관 전시, 특별군사작전 주제의 음악 제작 등을 통해 프로파간다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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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푸틴의 프로파간다 강화가 향후 영토확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에그버트 포튜인 러시아어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영화 자금 조달을 위한 우선 주제가 러시아 국민의 애국심을 강화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이는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침공을 러시아 국민이 지지하게끔 더 광범위하게 준비되는 작업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선전 전문가이자 역사학자인 이안 가너는 “푸틴 대통령의 시선이 동유럽을 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는 이와 관련해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풀어왔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애국적 영화나 학교, 대학에서 틀어주는 교육용 영화를 만드는 회사를 지원하고 베테랑 군인들을 초대해 강연을 여는 식”이라며 “러시아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같다면서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게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의 2차 대전 내러티브가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우크라이나로의 (영토) 확장에 대한 정당성이 됐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러시아는 2차 대전 말미에 소련에 의해 파시즘으로부터 해방됐거나 구원받았다는데 초점을 맞춰 동유럽 어느 국가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것”이라며 “따라서 침공은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 의견은 러시아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그러한 종류의 군사 행동을 수행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폴란드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위험 대상으로 거론했다.
특히 에스토니아에 대해 “담론이나 프로파간다 측면에서 러시아 스피커들로부터 우크라이나 내러티브를 똑같이 적용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은 에스토니아의 파시즘과 민족주의 정부로부터 러시아를 지켜야 하고 에스토니아에 있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한 발 내디뎌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역사적으로 에스토니아를 향한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에스토니아 내 러시아어 이용자의 분열을 촉발하는 방식 등이다. 가너가 경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너는 “에스토니아가 이를 막아내고자 열심이지만, 당장 문제는 서방 다른 국가들이 러시아의 경로에 대한 심각성을 거의 인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