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발행 나서
수요예측 물량 3조원 육박할 듯
'큰손' 수요에 물량 구하기 어려워
"상반기까지 대규모 발행 이어질 것"

“신종자본증권(영구채) 하나만 구해달라는 고객 주문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발행량을 늘려도 투자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서울 강남 압구정 지점에 근무하는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말이다. 본격 금리인하가 시작되면서 고액 자산가들이 서둘러 영구채 막차 탑승에 서두르고 있다.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회사채 투자 유인이 떨어지는 가운데 영구채가 고금리를 꾸준히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신(新)지급여력(K-ICS·킥스) 비율 규제 방식을 바꾸면서 후순위증권 발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져 영구채 투자 열기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달 중 금융지주·보험사 7곳이 영구채 또는 후순위채 발행에 나선다. 수요예측을 진행하는 전체 기업 19곳의 절반 가까운 규모다. 흥국화재(A-, 안정적)의 신종자본증권 2000억 수요예측이 전날 진행됐고, 내주 ABL생명(18일), 현대해상(19일)이 잇달아 후순위채 투자자를 확보한다.
NH농협손해보험은 7일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1000억 원 모집에 목표액의 6배 가까운 68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보험사가 아닌 금융사의 자본성증권 발행도 줄을 잇고 있다. 앞서 6일에는 하나금융지주가 상각형조건부증권(코코본드), 11일 기업은행이 영구채 수요예측에 나섰다. 오는 26일에는 메리츠금융지주가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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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들이 줄줄이 영구채 발행에 나서면서 이달 수요예측 물량이 3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사의 공모 회사채에 발행까지 합산하면 최대 5조 원에 이른다. 금융회사들은 우호적 투심에 힘입어 증액 카드를 검토 중이다. 이 경우 금융지주사들이 이달 발행하는 영구채는 약 2조6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금융사들의 발행 러시(질주)에도 불구하고 증권사에서는 영구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한다. ‘큰 손’ 투자자들의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에 거래되는 영구채의 시가수익률은 약 5% 초반 수준이다. 우량 신용등급이면서 만기가 긴 5년물 회사채 금리보다 1%포인트(p) 이상 높다.
영구채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매력적이다. 금융당국의 재무건전성 관리 압박 속에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영구채는 건전성 지표 산정 과정에서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킥스 비율을 방어하고, 금융지주들은 BIS자본비율 관리가 가능해진다.
다만 보험사들의 영구채 발행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이 ‘기본자본 킥스 비율’을 새로운 핵심 지표로 관리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이는 후순위채나 영구채 발행을 통한 보완자본을 인정하지 않고 핵심 자본인 자본금이나 이익잉여금만을 포함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하위 항목으로만 활용됐던 지표를 의무 준수 기준으로 격상하면서 보험사들은 후순위채 대신 순이익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대형사들은 아직까지 자본성증권 추가 발행 여력이 충분하나 일부 중소형사들은 한도가 대부분 소진돼 추가 발행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면서 “상반기까지 대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자본성증권 발행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