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에 '동의' 절차, 강제 없어야
확실한 초과 근로 수당 보장돼야
"직원들 건강 관리 중요…더 보상해야"
여야가 ‘반도체 특별법’ 처리에 뜻을 모았지만, 사회적 부담은 여전하다. 반도체 연구개발직 노동자는 주 52시간 근무 적용을 예외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노동계 등의 반발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산업 현장에서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노동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2월 임시국회 중 본회의를 열고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 처리에 공감대를 이뤘다. 여당 한 관계자는 “정부가 2월 중 민생 법안 다수를 통과시키자고 압박을 하는 상황인 만큼 이번 회기를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2월에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법안은 국무회의에서 공포한 뒤 시행된다. 현재 국회에는 여러 건의 반도체 특별법이 발의됐고 각각 정해둔 시행일은 저마다 다르지만 빠르면 법안 공포 후 3개월 이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특별법 처리를 놓고 노사 양측이 오랜 기간 진통을 겪어왔다. 반도체 연구개발(R&D)인력을 주 52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시장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경영계와 특정 분야에만 예외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노동계가 맞섰다.
사회적 대화를 위한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향후 법 시행으로 인한 우려도 상당하다. 현장 곳곳에서 세부적인 부분으로 마찰도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특별법이 업계에 잘 안착되게끔 노사가 대화를 이어가며 제도를 다듬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업계는 주 52시간 예외에 반도체 R&D 노동자들을 포함시킬 때 이들의 동의를 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의 생각은 다르다. 회사에서 ‘을’ 위치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를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다. 향후 인사평가 등에 반영되는 점도 걱정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 시간 적용제외 어떻게?’에서 “제3자의 감시 하에 본인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는 장치나 동의 과정에서 무기명 투표를 하게끔 하는 등의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교수는 “(40시간) 근로시간 예외 허용과 관련해 노동자 대표와 서면합의하라고 정해져 있지만,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누가 자신을 대표하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 제도에서도 근로시간에 대한 합의가 절차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실정을 꼬집은 것이다.
한 노동법 전공 교수는 “이번 특별법 적용 대상은 R&D 연구원들 중에서도 고액 연봉자들로, 회사에서 꼭 필요한 핵심 인력이며 근로 협상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어 이로 인한 불이익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소통은 중요하다. 당사자의 개별 의사를 확인하는 등 회사가 합리적인 소통 시스템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 근로시간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추가 수당도 확실하게 산정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하면 법적으로 문제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초과 근무 수당을 받을 수가 없었는데, 업무는 많으니 꼼수로 일만 더 해왔다. 무료 봉사를 해온 것”이라며 “차라리 반도체 특별법이 만들어져 이참에 확실하게 추가 수당을 합법적으로 더 받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정 근로시간을 넘어가게 되면 야간 수당과 휴일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김태정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는 “고소득 연구개발직은 기업에 핵심 자산이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고 고부가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만큼 (초과 근무에 대한) 동의를 받는 것도 당연하고, 만약 부담된다면 ‘신청’ 방식으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전문가들과 과다 근로 예방, 휴식권 확보, 건강검진, 심리상담 조치로 상시적으로 건강 관리하는 게 당연히 필요하고 당연한 의무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