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건전성 관리를 위해 기업대출 조이기에 들어간 은행들이 심상치 않은 환율 급등에 대출문을 사실상 걸어잠그고 있다. 이에 고물가·고금리에 고환율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회사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계기업으로 몰리는 중소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 속에서 은행들의 건전성도 악화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이달 26일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47조3347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665조9608억 원) 보다 무려 118조6261억 원(17.8%) 줄었다. 중기대출 잔액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올들어 처음이다.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잔액도 323조592억 원으로 3조9512억 원 축소됐다.
올 상반기만 해도 은행들은 출혈경쟁 우려가 나올 정도로 기업금융에 열을 올렸다. 올해 1월 2조8000억 원 늘어난 기업대출 증가폭은 △2월 6조5657억 원 △3월 8조4408억 원 △4월 10조8941억 원까지 폭증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중기대출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크게 오르자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전 은행권의 중기대출 연체율은 0.65%로 전년 같은기간(0.49%)보다 0.16%포인트(p) 상승했다.
최근에는 환율 문제까지 더해졌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위험가중자산(RWA) 확대로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추가적으로 대출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은행이 자기자본비율 관리를 위해 위험가중자산을 조정하는 경우, 중소기업 대출에 먼저 손을 댄다. 연체 위험성이 큰 중기 대상 대출일수록 위험가중치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들이 중기 대출을 더 옥죌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환율 폭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기들이 ‘대출 절벽’으로 까지 내몰릴 경우 한계기업들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빚을 갚을 수 없어 파산하는 영세 기업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44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13건)보다 19% 증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자체의 환율 변동에 대한 손익 영향은 현재까지는 크지 않은 상황이지만 환율이 얼마나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점인 것은 맞다”면서 “당분간 건전성 관리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대출 역시 보수적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어려움을 겪는 중기에 대해 만기연장이나 연장 기준 완화 등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