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제품 라인업 고객사 다수
고객사들의 요구사항 또한 많아
근로상한제에 즉각 대응 어려워
전문인력 업무 한해 예외 적용을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규제 완화 움직임에 반도체 업계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글로벌 인공지능(AI)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할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기대감에서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특히 삼성전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업계의 판단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제품 라인업이 넓어 많은 고객사를 갖췄으나 근무시간 제한으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부는 D램과 낸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LSI 등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AI 시장에서 중요한 반도체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D램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삼성전자의 제품군은 D램과 낸드만 생산하는 SK하이닉스에 비해 많은 편이다. 포트폴리오가 넓다보니 고객 수도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파운드리 분야가 그렇다. 고객사가 설계하면 파운드리인 삼성전자가 이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가전 등 대부분의 전자 기기에 들어가는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만큼 파트너사도 다양하다. 글로벌 2위 파운드리라는 시장 입지도 요인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다른 반도체 회사에 비해 삼성전자가 유독 고객사의 요구도 많이 받는 상황이다. 세계로 수출되는 제품에 대한 분석과 원인 개선, 고객사 요구에 대한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전 세계에 있는 고객사와 시차 등 문제가 맞물리며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 시간 적용제외 어떻게?’에 참석해 삼성전자의 이같은 환경을 설명했다.
권 교수는 “SK하이닉스는 상대하는 고객의 방향성이 적지만 삼성전자는 다양하다”며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에 훨씬 더 많은 요구를 하는데,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다 채운 뒤 (고객 요구에 대해) 긴급 대응을 해야 할 때 기존의 근무 시간 제한 제도가 오히려 한계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타로 뛸 수 있는 아르바이트 인력을 구할 수도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근무 시간을) 약간 넘길 수 있는 예외 조치를, 특정 전문 인력이 담당할 수 있는 업무에 한해서 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제품과 고객 수가 너무 많아서 ‘다이소’라고 불린다”며 “주 52시간 노동상한제가 적용되기 전에는 주말 저녁에도 연락이 오면 긴급 출동이었는데 이후 법적으로 어려워지니 그런 식의 대응 자체가 불가해졌다”고 말했다.
김태정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는 “52시간 연장 근로 준수로 월초에는 늦게까지 실험이 가능하지만 월말로 갈수록 근로시간이 부족해서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만약 리더급이 출근하지 못하면 진행 방향 결정조차 어려워진다”며 “고객이 갑자기 납기일을 당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는데, 근로시간 관리로 난감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