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양성, 양보다는 질...어떤 인재 키울지 전략 세워야”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04.09. (뉴시스)](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600/20250207175248_2134274_1200_752.jpg)
정부가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관련 첨단학과를 늘리고 있지만, 의과대학 열풍으로 인해 관련 인재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등장하면서 관련 인재 양성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졌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인재 이탈과 전략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 첨단분야 인재 양성 정책을 펴면서 첨단학과 및 정원을 늘려 왔다. 이에 따라 전국 4년제 대학의 ‘반도체·세라믹(공학)’, 신소재(공학)’ 등 반도체 관련 학과는 2022년 381개에서 지난해 396개로 늘었다.
하지만 첨단학과가 늘어나는 것과는 별개로 교육 현장에서는 인재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우수한 인재들은 의대로 편향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상위권 대학의 경우 학생들이 입학하더라도 재수해서 의대를 가려고 하고, 중위권 대학의 경우 반도체를 계속 한다 해도 취업이 연계된 중견,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으로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첨단학과 신입생 모집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종로학원이 2024학년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계약학과의 정시 합격자 미등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종합격 후에도 138명이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포기율은 179.2%로, 정시 모집인원(77명)의 1.8배가 등록을 포기한 셈이다.
![▲2024학년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계약학과 정시 합격자 미등록 현황](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600/20250210164920_2135016_1200_1342.jpg)
반도체 계약학과 합격생들의 이탈은 의대 선호 현상과 맞물려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최상위권 대학에서 반도체 학과 합격선은 메디컬 바로 다음 라인”이라며 “실제로 학생들이 정시나 수시에서 원서를 낼 때부터 의대와 반도체 학과에 동시에 원서를 내고, 중복 합격이 되면 반도체 학과는 추가합격으로 다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낮은 연봉 등 현실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전공 학생들의 이탈에 대해 “결국 돈을 많이, 빨리 벌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며 “석박사까지 된다 해도 돈이 많이 벌리거나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종환 교수도 “미국 같은 곳은 이공계, 특히 반도체 한다는 사람들에 대한 우대가 굉장히 좋다”고 했다.
낮은 처우 문제는 우수한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 채용도 어렵게 만든다. 안 전무는 “대학 내에서 인재를 양성하려면 가르치는 교수와 교육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교육 시설은 정부가 돈을 많이 대준다고 해도, 월급을 적게 주니 교수를 뽑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같은 첨단학과 학생들의 이탈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인재 양성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된 전략이 없으니 교육이 체계적으로 제공되지 못하고, 학부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유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분야에 대해 어떤 인재를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동의가 부족하다”며 “현 시점에서 어떤 인재를 기를지 국가가 전략을 짜야 하는데, 전략 없이 인재 양성만 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니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반도체 기초만 가르치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상황”이라며 “인력을 몇 명이나 양성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어디에 쓰임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수의 상위권 대학에만 집중돼 있는 정부의 지원 및 투자가 골고루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이종환 교수는 “상위권 대학뿐만 아니라 중위권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며 “반도체를 ‘반도체 생태계’라고 하는 게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인재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이든 연구 기관이든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딥시크는 우수한 인재를 계속 양성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한국도 위협을 느끼고 있는 만큼 반도체나 공학 분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처우가 좀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